[오다세츠] 화장실의 거울
나결님의 드림카피페를 참고했습니다. 나결님네 제로 양이 나옵니다.
"드디어 화장실 거울 속 저와의 가위바위보에서 이겼어요!"
요상스럽게도 구름이 가득 끼어 햇살 하나 내비치지 않고 으슬하던 여름날 오후, 탐정사 건물에 달린 화장실에 다녀온 제로가 한 말이었다. 세헤라자데도 요사노도 다자이도, 후쿠자와도 없던 사무실은 꽤나 적막했지만 방금 제로가 한 말로 순간적으로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쿠니키다는 미간을 꾹 찌푸리며 작성하던 서류를 저장하고 고개를 돌려 문가에 서서 뿌듯한 미소를 한껏 지어올린 제로를 바라보았다.
"제로, 거울이라는 게 뭔지는 이해하고 있나?"
"쿠니키다, 절 다자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당연히 알고 있다구요."
"그렇다면 거울 속의 너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하지만 실제로 이긴걸요. 제가 주먹이고 거울 속의 제가 가위를 냈으니까요!"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쿠니키다는 란포를 슬쩍 바라보았다. 란포가 어깨를 으쓱이는 것을 보니 확실히 거짓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진실이 될 리는 없지 않은가. 그 때 무언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비서인 하루노 키라코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제로와 쿠니키다는 동시에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으, 우즈마키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 건물에 귀신이 살고 있다고..."
"귀신이요?!"
나오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아니, 두 옥타브 정도는 높아져 있었다. 하루노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선 바닥에 떨어진 필통을 주워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꽤나 덜덜거리는 듯이 떨리고 있었다.
"아침에 카페 열 때면 어제 정리하고 간 거랑 다르게 물건들도 놓여있다고 하고...탈의실에 있는 거울을 보고 있으면 가끔 뒤편에서 뭔가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했어요...!"
"그, 그거 진짜 귀신이야?"
쿄카는 무서운지 제 옷자락을 꼭 쥐었다. 이럴 때 이 사무소의 누님 격인 세헤라자데나 요사노가 있었다면 적당히 도닥여줄 테지만 공교롭게도 둘 다 임무로 외출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사장님이라도 계셨어야 하는데! 쿠니키다는 셋을 동시에 임무에 내보낸 자신의 과실을 탓하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여자 화장실이니 자신이 가보겠다고 선뜻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오미는 시선을 살그머니 란포에게로 옮겼다.
"란포 씨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는 없어요?"
"내가 알 수 있는 건 일어난 사실인걸?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그게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는지야. 어떻게 카페의 물건들이 옮겨졌는지가 궁금한 거야?"
"그런 게 궁금한 게 아니예요! 으으으, 어떡하죠, 오라버니?"
나오미는 초롱한 눈동자를 제 오빠인 타니자키 준이치로에게로 옮겼다. 준이치로 역시 조금은 두려운 듯 제 옷의 단추를 만지작거리다 애써 어색한 듯 웃어보였다.
"그, 글쎄, 하지만 귀신이 나온다고 확정된 것도 아니고. 괜찮을 거야, 나오미 쨩."
"아앙, 그렇지만 너무 두려운 걸요! 오라버니, 나오미가 화장실에 가야 할 때면 꼭 같이 가주시기예요?"
"너희 둘, 적당히 좀 해 둬라. 애초에 유령이 있다고 확정짓지 마. 쿄카랑 아츠시가 겁먹지 않나."
쿠니키다는 가볍게 퉁을 놓곤 고개를 기울였다. 역시 자신이 가본다고 할까. 하지만 제로가 거짓말을 하지 않은 이상 그 화장실에 무언가 있는 것은 확실할 터.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그의 다문 입술 사이에서 가벼운 끙,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무실에는 조금 껄쩍지근한 침묵이 맴돌았다. 문득 비서 중 한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저어, 그으... 어쩌지요, 화장실을 가고 싶어졌을 땐..."
그 말로 지금까지 맴돌던 침묵은 한 층 더 짙어졌다. 아무도 섣부르게 입을 열지 않았다. 무려 그 란포까지도! 물론 그것은 쿠니키다에게도 해당되는 말로, 그 역시 조금은 초조한 기색을 내보이며 손에 쥔 펜을 휙휙 돌리고 있었다. 그 때에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꽤나 의외라고 할까, 혹은 역시라고 할까 하는 사람이었다.
"화장실 다녀올게-."
제로는 화장실을 다녀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쪼르르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쿠니키다는 그녀의 책상 위에 놓인 라무네 병을 보며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요새 저 구슬 때문인지 계속 라무네만 마시고 있는 것 같은데, 내일도 저러면 주의를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그였다.
제로가 없는 사무실 안은 작은 초침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적막했다. 다들 서류를 보는 것 같아도 전부 문을 힐끔거리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문 밖에서 다가오는 작은 발소리, 문이 벌컥 열렸을때는 사무실에 있던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와는 또 다르게 약간 풀죽은 듯한 표정에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가 할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타깝지만...이번엔 졌어요, 가위바위보."
"역시이!"
나오미가 반쯤 비명을 내지르며 옆에 있던 쿄카를 꼭 끌어안았다. 쿄카 역시 꽤나 두려운 모양인지 나오미의 품 속에 꼭 안겨들었다. 이래서야 오늘 밤 제대로 일하기는 글렀군. 쿠니키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정해라. 그것이 화장실에만 있다면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될 문제 아닌가."
"그거 완전 마리 앙투아네트같은 말인거 알죠!"
"그녀가 과자 대신 빵을 먹으라는 말을 했다는 건 루머다, 타니자키 나오미. 공교롭게도 우리 건물은 황무지에 세워진 게 아니니 옆 건물에 양해라도 구하면 될 문제가 아닌-"
쿠니키다의 말은 누군가의 비명에 의해 막혀버렸다. 이 목소리라면, 쿠니키다는 켄지를 돌아보았다. 켄지는 눈물이 반쯤 글썽이는 눈으로 사무실 한 켠에 걸린 거울을 가르켰다. 거울 위에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한 번 이기고, 한 번 졌어. 자정까지 승부가 나지 않으면 내 승리. 전부 거울 속으로 데려올 거야."
쿠니키다는 나직하게 소리내어 그 문구를 읽었다. 누군가의 장난이라기에는 과했다. 애초에 일어나있던 것은 제로 뿐이었고, 그 제로는 거울에서 가장 먼 곳인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 외의 다른 이가 일어서서 소리없이, 재빨리 그 글을 썼다기에 그 글은 너무 길었다. 귀신 같은 것을 믿는 주의는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나타나는데야 일단 믿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무실 안은 이미 불안에 가득차 있었다. 그 란포마저도 제 구슬을-하루노가 라무네 병을 깨서 꺼내준 바로 그 구슬이었다-만지작거리며 창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라도 말이 잘못 나오면 눈물바다가 될 것만 같았다. 쿠니키다는 마른침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를 대신 보내기보다 자신의 선에서 처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일 자신 대신 스승님이 계셨더라도 그렇게 하셨겠지. 그는 불안감을 애써 찍어누르고 마른세수를 한 번 했다.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니키다는 시선을 돌렸다. 거울이 이그러지는 것 같았다. 붉은 글씨가 서서히 그 형태를 바꾸었다.
[네가 올 거야? 여자화장실인데, 파렴치하네.]
유령인 네가 할 소리냐! 쿠니키다는 이를 으득, 갈며 거울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거울에 비친 그 자신의 모습이 이상했다. 입꼬리가 기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 모습이 퍽 기괴스럽게 무서웠다.
그 때,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짧은 비명이 울렸지만 그 문으로 들어선 것은 이 사무소의 기둥 격인 세헤라자데였다. 여느 때처럼 그녀의 뒤에는 오다 사쿠노스케가 서 있었다. 세헤라자데는 잔뜩 긴장되어 있던 사무소의 분위기를 알아채고선 고개를 살며시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니, 아가들?"
"언니이!"
쿄카와 나오미, 하루노가 도도도 뛰어 그녀에게 폭 안겨들었다. 그녀는 아하하, 소리내어 웃으며 그들을 보듬어안았다. 문득 그녀는 쿄카와 나오미의 눈가 끝에 매달린 작은 눈물방울을 보곤 고개를 살몃 갸웃였다.
"어머, 아가들. 무슨 일이 있기에 울고 있었니? 무어 무서운 이야기라도 하고 있던 거니?"
"그게 아니고, 실은-."
나오미는 기댈 사람이 왔다는 것에 안심한 건지 작게 훌쩍거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의 중간에 빠진 부분은 제로가 간간히 첨가해 주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세헤라자데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여보였다. 그녀는 흘러내린 외투자락을 끌어올려 제 어깨를 다시금 감싸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다사쿠는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잡았지만, 그녀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살며시 내저었다.
"...위험할 것 같다만, 세츠.."
"나는 이곳에서 가장 선배인걸, 사쿠. 내가 아니면 그 누가 이 아이들을 지켜주겠니?"
"그렇다면 내가 가도록 하겠다."
"어머, 저 거울 못 보았니? 아무래도 우리의 유령 씨는 꽤나 부끄럼을 타는 모양인가보아. 그러니 내가 다녀올게. 여자 화장실이니 여자인 내가 간다면 문제 없겠지. 응."
세헤라자데는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제 연인의 귀에 무언가를 속살거렸다. 오다사쿠는 그제야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한 발 물러섰다.
"내 아가들 잘 부탁해, 사쿠."
장난스러운 듯한 눈웃음을 흘리며, 그녀는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 즉시 오다사쿠는 방에 걸린 거울로 다가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집어들고-어느새 붉은 글씨는 사라진 후였다-창문 밖으로 집어던졌다. 어두운 밤이라 거리에 사람은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조금 당혹스러운 행동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을 한 당사자인 오다사쿠는 담담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그 자연스러운 행동의 일련에 어째서인지 다른 사람들도 침착해짐을 느꼈다.
"그러고보니, 셋 쨩 가위바위보 잘 못 하는데."
란포가 나직하게 중얼거린 말에 모두의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아니, 그러면 문제잖아?! 지는 거잖아?!"
"아, 그래도 셋쨩이라면 괜찮을 것 같은걸-."
란포는 느직하게 말하며 제 몸을 뒤로 제껴 편히 앉았다. 쿠니키다는 조금 지끈거리는 것 같은 이마를 감싸쥐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싶어졌다. 이제라도 제가 뛰어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헤라자데는 그보다 먼저 이 사무소의 직원이었지만 그것과 가위바위보 실력은 별개가 아닌가. 또한 그 무적처럼 보이는 이능력이 형태가 없는 유령에게도 통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5분 정도, 사무소 내에는 조금은 껄적지근한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긴장되는 듯 손을 모으고 무언갈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직 오다사쿠와 란포만이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앉아있었다. 저것이 믿음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천하태평한 것인지 아츠시로써는 잘 판단할 수가 없었다. 이내 사무소의 문이 빠끔히 열렸다.
"이제 화장실 가도 된단다, 아가들."
세헤라자데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그 부드러운 미소는 언제나 사람을 조금 진정시켜주는 듯도 하였다. 하지만... 아츠시는 그녀가 조금 지쳐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쿄카가 쪼르르 뛰어가 세헤라자데에게 안기기 전까지였다.
"...어떻게 한 거야..?"
"어머머, 아가. 많이 무서웠구나? 간단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단다. 그 아이는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비추고 움직이는 모양이니, 이곳에서 떠나지 않으면 이 건물의 모든 거울을 깨버리겠다고 하였지."
우후후, 소리내어 웃는 그녀의 표정이 밝아, 모두들 저도 모르게 그렇구나, 하며 납득해버렸다. 세헤라자데는 고개를 살짝 돌려 제 연인을 바라보았다. 오직 한 사람만이 본 그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지쳐있었다.
"네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손 댈 생각은 없었단다. 그저 가만히 있지 그랬니."
세헤라자데는 거울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거울은 끼긱거리는 소리를 내며 제 표면에 붉은 글씨를 아로새겨갔다. 거울에 비친 세헤라자데의 인영은 기묘한 표정을 지은 채였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을 해서 입이 찢어질 듯 웃는 그 모습은 꽤나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을 터다.
"아니, 너에게 선택지를 주는 것이 아니란다. 당장 이곳에서 떠나렴. 그렇지 않으면 거울을 깰 거란다. 수십년간 거울 안에서 사람들을 지켜봐왔던 너라면 나의 이능도 알고 있을 터. 천 개의 문 중에 네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무기가 있을 거라곤 생각치 않니?"
세헤라자데의 어조는 부드러웠지만 동시에 엄격했다. 그녀의 눈은 꽤나 딱딱하게 굳어서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 붙어 저주하겠다고? 오, 이런, 아가. 그런 말을 한 것이 아가가 처음일 것 같니? 너는 허세가 아니라고? 내게 그 동안 그런 말을 했던 이들도 빈 말은 아니었단다. 너라면 보일텐데. 보렴! 날 저주하겠다고? 그 전에 이 아이들의 원혼과 타협할 수는 있겠니?"
세헤라자데는 외치듯 말하며 거울을 제 손으로 탕, 하며 쳤다. 그녀의 몸이 기괴하게 뒤틀리거나, 무언가 피어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거울 속에서 거울을 통해 그녀를 보는 귀신의 눈에는 세헤라자데의 뒤에 엉겨붙은 수많은 이들의 혼이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내 거울은 잠잠해졌고, 세헤라자데는 거울을 한 번 부드러이 쓰다듬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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