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시리우스 블랙 드림




“응, 나는 시리우스가 좋아!”


환히 웃으며 말했던 그 말이, 그 목소리가, 그 표정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리우스 블랙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창가에 제 머리를 기대었다. 시원한 창문에서 냉기가 그의 뺨을 타고 올랐다. 얼마나 된 일이었지, 그는 눈을 느릿하게 깜박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많은 여자애들이 보았다면 저렇게 나른한 모습마저도 멋있다고 좋아할 터였다. 그 역시 그런 환성을 마다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째서일까 지금은 그런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가 듣고 싶은 것은 여자아이들의 그것이 아니라-.


“패드풋!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시리우스의 생각은 방금 문을 박차고 들어온 그의 친구, 제임스 포터에 의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임스가 들어오는 걸 본 순간 그가 생각을 그만둔 것에 가까웠지만. 그의 친구 제임스 포터는 타인의 일에 한해서, 눈치가 굉장히 빨랐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불쾌해하는지-이 눈치는 특히 스니벨루스, 그러니까 그 음침한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향해서는 정말 잘 발동되었다. 제임스는 스네이프가 싫어할 만한 일을 서른 가지 정도 알고 있었는데, 문제라고 한다면 스네이프 역시 제임스가 싫어할 만한 일을 서른 가지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굉장히 잘 알고 있었다.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제임스는 제 앞에 있는 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굉장히 잘 맞추기도 했다. 그렇기에 시리우스는 방금까지 골몰하고 있던 생각을 제 머릿속에서 멀찍히 쫓아내어버렸다. 그가 제 생각을 읽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제 생각을 알아챈다면……그 뒤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별 거 아니야, 제임스. 그리고 다 들리는 데서 패드풋이라고 부르는 거 그만둘래? 어제는 1학년 후배가 날 보고 패드풋 선배라고 불렀다고.”

“뭐 어때, 네가 패드풋인건 맞는 말이잖아!”

“아, 그러셔. 프롱스. 너는 갈퀴 갈래 선배라고 불리면 퍽 좋으시겠어?”


그들은 언제나처럼 투닥대며 킬킬대고 웃었다.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찬란한 봄날의 햇살이 그들을 상냥하게 비추었다. 리무스가 방 안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 뒤에는 언제나처럼 작은 피터가 있었다.


“더 늑장부리다간 반장한테 혼날걸, 너희 둘 다 말야. 배도 안 고파?”

“우리의 잘생긴 패드풋이 무슨 일인지, 간만에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잖아. 친구로써 무슨 일인지 들어는 줘야지. 안 그래, 무니?”

“프롱스, 누누히 말하지만 내가 너보다 그 생각이라는 걸 더 하고 살거든. 너도 생각이라는 걸 좀 해보지 그래?”

“오, 난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 패드풋.”

“무슨 생각, 릴리 생각?”


무니, 리무스 루핀이 짓궂게 던진 질문에 제임스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에 루핀과 피터, 그리고 시리우스가 킬킬거려 웃었다. 다만 시리우스는 속으로 조금, 제임스가 대단하다는 생각 역시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좋은 아침이야, 다들 이제 아침 먹으러 가? 아, 시리우스! 오늘도 잘생겼구나!”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울렸다. 특히 시리우스에게는 더더욱 익숙하고 더더욱 반가운 목소리였을 터다. 그는 발개지려 하는 뺨을 억지로 참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대니카. 너도 이제 아침 먹으러 가는 거야?”

“으응, 주말이라 그런지 늦잠을 자버렸지 뭐야. 너희도 그랬니?”

“뭐, 그런 셈이지.”


시리우스는 괜시리 간질거리는 마음이 혹시라도 들통날까 봐 말을 하기 전에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제가 지금 하려는 말을 되뇌어 보았다. 자연스레 그의 대답은 한 템포 늦추어졌고, 그래서 제임스와 루핀은 그가 왜 아침에 그렇게 고민에 빠진 채로 앉아있었는지 얼추 눈치챌 수 있었다. 제임스의 뺨에 슬금슬금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어렸다. 그가 짓궂은 미소를 한껏 띄우며 입을 열자, 루핀이 작게 웃으며 그의 팔목을 잡아채었다. 그에 제임스는 작게 움찔하며 열려던 입을 꾹 다물었다. 뭐니뭐니해도 루핀이 화나는 것만큼 무서운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제임스는 루핀이 화를 내는 것을 퍽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이는 시리우스에게 몰래 “맥고나걸 교수님이 화내는 것보다 무니가 화내는 게 더 무서워.” 라고 말한 데서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니카는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헤헤 웃으며 시리우스에게 예의 그 칭찬을 잔뜩 쏟아붓고 있었고, 시리우스는 점점 뜨거워지는 귀를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문득 대니카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시리우스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 …무슨 일이야, 대니카? 나한테 뭐라도 묻었어?”


잠시 말없이 시리우스를 빤히 올려다보는 대니카에, 결국 시리우스는 슬그머니 피하고 있던 시선을 돌려 대니카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니카는 잠시 그 작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옅은 녹갈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물결쳤다. 라넌큘러스의 향일까, 시리우스는 그 부드럽고 옅은 향에 문득 찌잉하는 울림을 느꼈다. 여자들의 향수 냄새에는 도저히 적응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보다.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그 향은 라넌큘러스 같기도 하고, 네프로레피스 같기도 했다. 무슨 향인지 물어보면 실례겠지, 시리우스는 그 검은 눈동자에 대니카를 가득 담았다.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모습이 그야말로 그림에 나오는 천사, 아니, 미의 여신 프레이야나 아프로디테에게 비견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맙소사, 도대체 과거의 나는 이 애를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대했지? 눈에 뭔가 끼였던 게 틀림없어. 시리우스는 그런 생각을 하느라 대니카가 한 말을 순간 흘려버렸다.


“-거 같아, 시리우스.”

“어? 미안,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줄래?”


시리우스는 문득 대니카의 부드러운 회색 빛 눈에 걱정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라, 나 뭘 잘못했지? 문득 걱정이 끼쳐와, 그는 리무스와 제임스를 바라보았지만 둘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 대화를 길게 나누고 있었다. 중요할 때 도움이 안 된다니까. 시리우스는 조금 초조해하며 입 안을 살짝씩 깨물었다. 아릿한 아픔이 조금 느껴졌다.


“시리우스, 오늘 어디 아픈 거야? 귀도 새빨갛고, 조금 아파 보이는걸. 괜찮으면 병동까지 데려다 줄까?”

“어? 어, 아냐, 나 전혀 안 아파. 그냥 조금, 어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랬어.”

“하지만…열 나는 것 같은걸. 정말로 괜찮은 거야?”

“아, 응, 정말 괜찮아…그보다 아침에 늦겠다, 대니카. 어서 가자. 에반스가 아래에서 기다리겠는걸.”


시리우스는 대충 둘러대곤 대니카의 조금 뒤로 물러서, 그녀의 등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 작은 접촉만으로도 볼이 새빨개질 것만 같고,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기숙사에 꽉 차도록 가득히 들려올 것만 같아서 그는 숨을 훅 들이켰다. 옅은 라넌큘러스 향이 그의 마음에 가득 차올랐다.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그의 몸 전체를 쿵쿵하며 울리는 것 같아, 그는 그제야 제 마음을 제대로 자각할 수 있었다. 나, 이 애를 좋아하는구나. 시리우스의 얼굴이 장미꽃마냥 화르륵 타올랐다. 회빛 눈동자 안에 당혹감이 절반, 부끄러움이 절반 담겨 일렁였다. 그 모습을 본 리무스 루핀은 지금 제 친구가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1년, 아니 1년 반 정도 되었을까. 제임스 포터에게서 볼 수 있었던 눈과 정확히 꼭 같은 눈동자였으니까.

시리우스의 말대로 릴리 에반스는 기숙사 아래에서 대니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대니카를 보내고 나서 잠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제 감정을 자각하고 나니 릴리 에반스에게 무작정 들이대는-그 자신은 무작정이 아니라고 하겠지만-제임스가 왠지 대단해보이는 그였다.


“있잖아, 프롱스.”

“뭐야, 너 왜 그래? 진짜 어디 아프냐?”

“나 진짜 미쳤나봐.”


시리우스가 작게 내뱉은 말에 제임스도 이게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아챈 것인지 작게 키득대며 그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달디단 고민을 가득 안은 한숨이 시리우스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


‘그러니까 말야, 우선은 네 감정을 알려주는 게 우선이라니까! 이 제임스 포터 님이라면 말주변도 좋고 잘생겼으면서 재치까지 넘치니까 바로 이야기도 나누고 하겠지만! 어쨌든 우선은 근처에 가서 좀 기웃거리기부터 해!’


제임스의 충고-이거, 정말로 충고 맞나? 시리우스는 고개를 갸웃였다-가 귓가에 쟁쟁 울렸다. 그렇게 말을 해도, 부끄러우니 어쩔 수 있나. 지금은 걸어다니는 걸 보기만 해도…시리우스는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시선의 저편에 앉아 있는 녹갈색 머리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전의 말은 취소해야 할 것 같다. 걸어다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숨만 쉬어도 귀엽다. 시리우스는 다시 붉어진 뺨을 숨기려 고개를 푹 숙이었다. 이래서는 제임스가 말한 대로 곁에 가기는커녕 바라보는 것도 버거웠다. 말은 제대로 걸 수 있을까. 시리우스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고민에 빠져들었다. 아니, 뭐 그래도. 일단은 대니카가 나를 좋아하니까… 아니, 내 외모를 좋아하니까 반은 먹고 들어간 거 아냐?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내밀고 있던 입술을 집어넣었다. 다시 고개를 든 앞에는 아까 그가 살며시 바라보던 소녀-대니카-가 있었다.


“-!”


사람은 너무 놀라면 소리도 내지 못한다더니, 시리우스와 대니카를 조금 멀찍이서 보고 있던 스칼렛은 고개를 살래살래 내젓고 다시 빗자루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시리우스는 스칼렛의 생각대로 소리를 내지 않은 채 비명을 질렀다. 정신적인 비명을 들을 수 있는 종류의 유령이 있었다면 아마도 귀를 틀어막은 채 짜증을 부렸을 터였다.


“시리우스, 오늘도 잘생겼구나!”


히이, 하며 웃는 그 얼굴에 시리우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의 뜻에 동의를 표하기보다는 그저 대니카의 말이니까 무작정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으리라. 만일 그녀가 “너, 시리우스 아니지?” 라고 했어도 고개를 끄덕였겠지. 릴리 에반스는 작게 키득이며 스칼렛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스칼렛은 시선을 살짝 들어 키득여 웃곤 다시금 고개를 숙여 이번에는 빗자루의 손잡이 부분에 광을 내기 시작했다.

대니카는 시리우스를 빤히 보다가, 걱정된다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이런, 이거 지난 주말이랑 똑같은걸. 시리우스의 머리 한 쪽에서 비상등이 켜졌다. 그는 그제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니카를 바라보았다. 멀린 맙소사,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예쁘지? 그 생각이 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는 또 다시 대니카의 말 앞 부분을 놓칠 뻔 했다.


“시리우스, 어제부터 계속 아픈 것 같아. 정말로 괜찮은 거야?”


여기서 아프다고 할 수는 없지. 어떻게 하지, 시리우스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블랙 가문의 사람들이 알게 되면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시리우스 블랙이 처음으로 애를 쓰는게 여자 문제라니! 하면서. 아, 그러고보니 그 녀석이 있네. 시리우스는 제 남동생을 순간 떠올리곤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알게 되면 골치아픈데.


“시리우스! 정말 어디 아픈 거지, 그렇지?”


대니카는 조금 안절부절 못해하며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무슨 근사한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어떤 문장이 그의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아니, 난 괜찮아. 그것보다 너도 오늘 참 예쁜걸, 대니카.”


딱 그 순간 기숙사 휴게실이 조용해졌던 것일까, 아니면 그 말 때문에 조용해진 것일까. 그리핀도르 휴게실에 정적이 흘렀다. 릴리와 스칼렛도 고개를 들고 시리우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게 맞나? 라는 말이 그들의 얼굴에 쓰여 있었다. 시리우스는 대니카를 향해 한 번 웃어보이고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제 침실로 향했다. 뒤에서 비명소리 같은 것이 조금 들려왔다. 침실에서는 늘어나는 귀로 휴게실 상황을 들었을 것이 틀림없는 제임스가 침대 위를 뒹굴고 있었다.


“너도 오늘 참 예쁜걸이래!”


시리우스는 말 없이 제임스에게 베개를 하나 집어던지고 시뻘개진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마지막에 언뜻 본, 볼이 살짝 발그레해진 대니카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쩜 사람이 그렇게 귀여울 수 있지? 옆에서 제임스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를 놀려댐에도 불구하고-리무스 루핀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임스는 확성기를 이용해 떠들고 있던 것이었다-시리우스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제 기억 속에 남은 대니카의 얼굴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시리우스는 문득 고개를 들어 리무스를 바라보았다. 리무스가 제임스에게 무언가를 던지려다 말고-잠깐, 저거 잉크병 아니야?-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시리우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무니… 혹시 대니카가 우리랑 같이 듣는 수업이 뭐더라?”


-


“시리우스, 그게 문제야.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니까? 대니카는 네 얼굴을 좋아한다고! 나머지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욕이랑 칭찬 둘 중 하나만 해라.”

“욕도 칭찬도 아니고 사실인데?”


제임스는 낄낄거리다가 시리우스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순간 움찔한 시리우스는 제 시선에 들어온 대니카 때문에 한 번 더 크게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보다 머리가 조금 더 곱슬거리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착각이든 아니든 귀여운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마치 천사가 걷는 것 같아. 시리우스의 귀가 순식간에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제임스는 얘가 드디어 미쳤구나, 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선 그를 대니카 쪽으로 밀어버렸다. 당황해 돌아보는 시리우스의 눈에 ‘책’ 이라는 입모양이 보였다. 책? 책을 어쩌라는 소리야. 시리우스는 잠시 당혹스러워하며 비틀거리다가 대니카가 들고 있는 책을 보았다. 저 책이 저렇게 무거워 보였나? 그는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미소를 지으며-실제로도 훌륭한 미소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대니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대니카. 신비한 동물 돌보기 들으러 가는 길이야?”

“아, 응, 맞아. 시리우스 너도 신비한 동물 수업 들으러 가니?”


그녀의 작은 미소 하나가 그에게는 태양보다도 더 밝은 그것으로 비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시리우스는 미소에 기쁘면서도 동시에 조금 초조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미소를 보고 다른 녀석들이 반하면 어떡하지? 뭐, 그래도 그 중에선 내가 제일 잘났지만. 시리우스는 그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대니카의 손에서 책을 받아들었다.


“같은 수업 들으러 가는 김에 내가 들어줄게. 무거웠겠다.”


평소에 드는 것과 같은 책이었지만 시리우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대니카가 깃털 하나만 들어도 그렇게 무거운 것을 어떻게 드냐며 호들갑을 떨 것이다. 대니카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싶더니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뭐, 시리우스가 나랑 친해지고 싶다면 나쁠 건 없지! 더 많이 보는게 좋은걸!’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뻔했지만 시리우스는 이것이 제 연애전선에 켜진 환한 등불처럼 느껴졌다. 친구든 뭐든 가까워지는 데서 시작하는 거라구! 제임스의 말이 왕왕 울려퍼지는 것 같은 시리우스였다.

그 뒤로 시리우스는 대니카의 옆에 꼭 붙어다녔다. 그 덕에 대니카를 질투하는 여자애들도 제법 있었지만 감히 대니카를 건드릴 생각을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십중팔구는 대니카를 잘못 건드렸다가 제임스 포터와 성격 더럽고 하나를 열로 갚는 스칼렛 라일리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들이 하나 착각한 것이 있다면, 대니카를 건드렸을 때 가장 먼저 움직일 것은 제임스 포터와 스칼렛 라일리가 아니라 시리우스 블랙과 스칼렛 라일리라는 점이겠지만. 특히 스칼렛은 제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옷에 잉크를 쏟아 붇는 등으로 괴롭히던 상급생이 퀴디치 응원을 할 때 그녀의 자리 바로 옆에 블러져를 차서 객석을 부숴둔 적이 있었으니 어지간히 두려웠을 것이다.


“여, 대니카의 그림자!”


제임스는 능청맞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시리우스는 그 호칭에 단 하나의 짜증도 느끼지 않는 듯 꽤나 환히 웃으며 뒤를 돌았다. 물론 그 표정을 보고 토하는 시늉을 하는 제임스에게는 짜증을 내며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지만. 제임스는 툴툴대며 시리우스에게 양피지를 들이밀었다. 시리우스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양피지를 받아들었다. 양피지는 <마담 퍼디풋의 찻집>의 데이트 이용권이었다. 이게 대체 뭐야, 데이트 이용권이라는 것도 있었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시리우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고, 제임스는 미소를 실실 흘렸다.


“그거 가지고 가면 특별한 2인석에 안내해준대~!”


마담 퍼디풋의 찻집. 온통 분홍색 일색인데다가 레이스와 프릴로 사방이 번쩍거리는 곳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같이 가는 상대가 대니카라면…정말 가고 싶다.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양피지를 곱게 접어 주머니 속에 넣었다. 대니카가 이번 호그스미드 방문일에 나간다고 했던가, 꼭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차 둥실둥실 떠올랐다.


-


“대니카, 이번 호그스미드 방문일에 뭐해?”

“아, 시리우스. 안녕. 으응, 글쎄, 딱히 일정은 없는데. 시리우스 너는 제임스랑 리무스랑 피터랑 같이 놀러나가니?”

“아, 이번에는 아니야. 이번에는, 음,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발개진 얼굴로 말하고 내려다본 대니카의 얼굴에는 꽤나 순수한 의문이 가득했다. 시리우스는 조금 당황하며,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양피지를 조금 구겨버리고 말았다.


“그렇구나-! 같이 나가고 싶은 게 누군지 몰라도 참 좋겠다, 응!”

“어?”


시리우스는 당황한 채로, 얼빠진 답을 하고야 말았다. 이거, 진심일까? 지금까지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다는 거야, 뭐야. 뱃속으로 커다란 바위가 하나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곳에서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너무나 마음이 커져버려서 섣불리 놓을 수가 없었다. 시리우스는 눈을 꾹 감고 입을 열었다. 방금까지 매끄럽게 굴러가던 혀가 갑자기 뻣뻣하게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내가 같이 나가고 싶은 사람은 너야, 대니카.”

“…어?”


이번에는 대니카가 얼빠진 대답을 할 차례였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 안에 당황이라는 감정이 서서히 퍼지는 것이 보였다. 시리우스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콱 움켜쥐듯 다잡았다. 그녀가 정말 자신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해도, 여기까지 온 이상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대니카, 나는 네가 좋아. 괜찮다면 같이 데이트 해 줄래?”


시리우스는 주머니에서 조금 꼬깃해져버린 양피지를 꺼내어 대니카에게 내밀었다. 잠깐 굳어있나 싶던 대니카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양피지를 받아들었다. 그녀의 뺨이 서서히 봄의 꽃빛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귀에 새빨간 단풍이 들었다.


(공포 9016 자)


+)


레귤러스 블랙은 제 방에서 천천히 편지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와 제 형의 근황이 상세히 적힌 그 편지는 블랙 가문의 가주에게 전달될 것이었다. 문득 그는 깃펜을 멈추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리핀도르에 있는 제 형과 제 형이 요즘 졸졸 따라다니는 소녀에 관한 것이었다. 평소부터 미쳤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미쳤을 거라곤 생각치 못했는데… 레귤러스는 깃펜의 끝을 잘근 씹었다. 원래대로라면 그 여자가 혼혈이라는 것도 써야 할 테지만….레귤러스는 거의 다 채워가던 양피지를 불 속에 던졌다. 이유를 묻는다면 답할 수 없었지만,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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