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아일라 던컨] [루칸나로]
칸-아일라 던컨은 제 은빛 눈동자에 세상을 몇 번이고 담아내었다. 몇 번은 카사노의 등 위에 앉아서였고, 몇 번은 가장 높다는 산 위에 올라서, 몇 번은 거대한 새의 다리를 잡은 채 활강하면서였다. 세상은 언제나 똑같았다. 산이 깎였고 강이 생겼으며, 호수가 메워지고 산이 높아졌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들과 수많은 이종족들이 살고 있었다. 언제나 다툼이 있었고 언제나 그 다툼을 해결하기 위한 화해가 있었다. 평화는 몇 번이고 깨어졌고 전쟁은 끝없이 일어났다. 몇 백, 몇 천, 몇 만의 인간을 보아왔다.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 칸-아일라 던컨은 웃어버렸다.
수많은 종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종족들은 전부 각각 자신들만의 독특한 성향을 띄었다. 인간은 그 누구보다 생이 짧았다. 그들은 자신들끼리 뭉쳐 다른 종족들을 배척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끼리 뭉쳐 지내는 것도 아니었다. 끊임없는 전쟁의 대부분은 인간들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카사노는 종종 그녀에게 인간들만큼 지켜보기 재밌는 존재들도 없다고 일러주었다. 칸나는 이제서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인간들 중에서, 수많았고 수많으며 앞으로도 수많을 이들 중 단 하나도 그녀의 시선을 끌지 않았다.
숲을 사랑하는 엘프들은 생명을 해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법 중 그 어떤 것도 사람을 직접 해하는 것이 없었다.
보석의 찬미자 드워프들은 뛰어난 전사였다. 그들의 왕은 이끌되 지배하지 않았다. 가장 뛰어난 전사와 가장 현명한 현자가 두 명의 드워프 왕이 되었다. 그들의 1년은 9개월 동안의 공예와 3개월 동안의 축제로 이뤄졌다. 칸나는 그들과 함께 지내던 내내, 9개월동안 가장 뛰어난 전사인 드워프 왕과 지내었다. 그는 유일하게 공예를 하지 않는 드워프였다.
드래곤. 칸나는 드래곤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드래곤들은 제법 되었지만 직접 대화를 해본 것은 두엇 정도 뿐이었다.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드래곤인 카사노는 인간들과 가장 친하게 지내는 '호의적인' 드래곤이었다. 그녀가 드래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영겁의 시간을 보내며 자연과 하나가 된 존재들이라는 것 뿐이었다. 카사노를 보면 정말일까, 싶은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리고 라이칸스롭. 수인족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고 일컬어지는 수인이었다. 수인족 자체도 희귀하기 짝이 없는데, 라이칸스롭은 그런 수인족 가운데에서도 가장 보기 힘든 수인들이었다. 라이칸스롭. 칸나는 제 피에 흐르는 그 피에 고마워해야 할지 증오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피는 압도적인 강함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주었다. 자신이 정을 주었던 존재들은 더 이상 이 땅 위에 먼지로써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억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전설로도 남지 않고, 전설의 뒤안길로 사라진 영웅들을 그녀는 수십 명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칸나는 가끔 별을 보며 말을 걸곤 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어떤 드워프도, 그 어떤 엘프도, 그 어떤 드래곤도, 그 어떤 수인들도 죽은 후에는 답하지 못했다. 그들을 기리는 노래도 이야기도 전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인간은 조금 다를지도 몰라. 어느 여름 날 그녀가 문득 떠올린 생각이었다. 인간들은 영웅을 기렸다.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그것을 남겼다. 인간의 수는 방대했고 이야기도, 노래도, 시도 많았다. 많은 시들이 사라졌고, 많은 이야기들이 불태워져도 그것은 결국에 살아남았다. 칸나는 그 어떤 매력도 찾을 수 없었던 인간들을 바라보기로 결정했다.
재미있는 인간들. 칸나는 웃었다. 영웅의 후손, 기사도의 나라. 세날이라고 했었지. 칸나는 누운 채 그들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가장 영웅답지 못했던 영웅의 후손과 기사도를 따르는 그의 아들. 그리고 귀염둥이! 칸나는 로엔의 얼굴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 귀염둥이가 현자라니, 생각만 해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은 인간이 있었다. 아니, 인간'들'이 있었다.
신이 만든 천칭의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두 인간이었다. 하나는 왕이고 하나는 장군. 속한 나라도 다르고 성장한 배경도 다르나 그 둘은 놀랍게 닮았으면서 달랐다. 그들은 다른 인간들하고도 달랐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만, 그것을 떠안고 이상을 좇았다. 가장 현실적으로 사고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것을 원했다. 이상이라! 칸나는 생각했다. 여태껏 자신에게 그런 것이 있었던가. 언제나 눈 앞의 삶만을 살았다. 이상 같은 것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지켜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칸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오늘은 어느 쪽으로 가 볼까. 여태껏 방관자로써 지켜보던 그녀는 적극적으로 삶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제부터 겨우 써지기 시작한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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