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그거 알아?”

 “..뭐.”


 길을 걷는 한 쌍의 남녀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길게 기른 연하늘색 머리의 아가씨와 가무잡잡한 피부의 검은 머리 청년이었다.


 “왜 시비조야? 기분 나쁘게.”

 “네가 기분 나쁘기 때문이지. 헛수작하지 말고 본론이나 말해. 에스트레아 페른.”

 “아니, 이 빌어먹을 자아도취 왕자가.”


에스트레아라고 불린 여자는 제 옆을 걷던 남자-샤흐나즈 지브릴 유수프 하룬 할리드-의 옆구리를 제 팔꿈치로 내질렀다. 샤흐나즈는 도끼눈을 치홉뜨며 에스트레아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빌어먹을. 너랑 같이인걸 알았다면 절대 안 왔어..”

 “누구는 알고 온 줄 아냐? 와이크함이 오는 줄 알았다고! 와이크함네 애기들 보러 가는 건데!”

 “길드장이 그것도 모르냐!”

 “길드장이 신인줄 아냐! 애초에 네가 오늘 아침에 가겠다고 변덕부렸잖아!”

 “그때는 네가 아니라 엘레나가 가는 줄 알았으니까!”

 “엘레나 건드리면 머리카락 죄다 뽑아버린다!”


 둘은 한동안 서로를 향해 왁왁거리다가 씨근거리며 숨을 골랐다. 엘레나는 흐트러진 제 머리를 다시 곱게 정리하며 샤흐나즈를 흘겨보았다. 샤흐나즈도 그냥 지고 있지만은 않았는데, 그 역시 그 붉은 눈을 최대한 험악하게 부라리며 에스트레아를 바라보았다. 녹색과 붉은색의 시선이 첨예하게 부딪혔다. 에스트레아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안개가 낀 날에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라고. 이 흐느낌 소리가 뭐냐면 말이지, 안개 낀 날에 사라지는 사람들을 위해 우는 귀신의 울음소리라는 이야기가 있어.”

 “헛소리 하지 마.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악마도 있는데 귀신이라고 없겠냐?”


 차분해진 것은 고작 1분 남짓이었을까, 그들은 또 다시 티격태격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다퉈가며 길을 걷던 와중, 샤흐나즈는 에스트레아의 어깨를 잡아돌려-그녀는 계속 그의 쪽을 향한 채로 무언가의 불만을 털어놓고 있었다-앞쪽을 보게 했다. 짜증을 내는 듯 잔뜩 찡그려진 그녀의 미간이 앞의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환히 펴지었다. 무언가, 놀라운 것을 발견한 듯이.


 “저게 뭐야..?”

 “아마도 네가 말한 그 안개겠지.”

 “아무래도 그 유령이, 오늘도 슬퍼하는 모양이네. 도망갈건 아니지, 왕자님?”

 “누가 도망가. 너나 도망갈 생각 마라.”


 그들은 그런 대화를 주고받고선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워올렸다. 호승심으로 홧홧하게 불타오르는 듯한 미소였다.

 마을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안개가 낀 날에 귀신이 나온다, 라는 괴담이 퍼진 탓이었을까. 에스트레아와 샤흐나즈는 조용한 마을 안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고, 이내 서글프게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신경을 한껏 곤두세웠다. 같은 길드의 일원이 부탁한 일, 그저 제 아들들이 잘 지내는지만 보고 인사 좀 전해줘. 라는 이 간단한 부탁이 이런 오싹한 일을 동반하고 올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샤흐나즈와 에스트레아는 씁스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씁스레한 미소 뒤의 눈동자는 무언가에 대한 호승심으로 활활 불타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두운 머리 아래로 금안을 빛내는 사내는 안개 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안개가 낀 날 나타나서 우는 귀신이 두렵지도 않은지 안개 속을 잘도 헤치고 다녔다. 아니, 그는 안개 낀 날의 귀신을 두려워할리 없었다. 그가 바로 그 귀신의 정체였으니. 그런 형형한 소문의 주인공이 된 사내는 어딘가 기괴해보이거나, 험악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서글서글한 인상 쪽에 더 가까운 인상이었다. 그것은 말려올라간 그의 입꼬리 때문일까, 혹은 발갛게 부어오른 그의 눈가 때문일까. 사내는 그 대답을 알고 있지 않았다. 카노르라고 불리는 그 사내는, 누군가를 찾는 듯이 안개 속을 정처없이 헤매었다. 그런 그의 귓가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명백히 외지인의 것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안개가 낀 날이면 밖으로 잘 나오려 들지도 않을 뿐더러, 혹시나 나오게 된다고 하여도 발소리를 잔뜩 죽인 채 돌아다니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발소리, 아니. 발소리’들’은 제 기척을 감추려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카노르는 왜일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선 발소리들을 향해 빠르고 조용하게 향했다.

 이내 카노르의 눈에 비친 것은 남녀 한 쌍이었다. 연하늘빛 머리의 아가씨와 구릿빛 피부에 검은 머리의 청년. 둘 다 키가 제법 컸고 소매 아래로 드러나는 팔에는 근육이 제법 붙어있었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조금 배제할법도 한 상대였다. 특히, 연하늘빛 머리를 폴어 길게 늘어트린 아가씨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묵직한 메이스를 고려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카노르는 딱히 고려할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들에게 접근해, 메이스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카노르의 손목은 억센 구릿빛 손에 잡혀 있었다. 연하늘빛 머리의 아가씨-에스트레아 페른-와 마주보고 있던 사내-샤흐나즈-가 카노르의 손목을 낚아챈 것이다.


 “이런 거 하나 눈치 못 채나? 말만 길드장이군.”

 “눈치 못 채서 가만히 있던 거 아니거든.”


 에스트레아는 도끼눈을 뜨고 샤흐나즈에게 으르렁 댄 후에 카노르를 향해 돌았다.


 “안녕, 예쁜 오빠?”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꽤나 예상키 어려운 말이었다. 에스트레아는 만면에 미소를 띄워올리며 웃었고 카노르는 그 모습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처음보는 반응이었으니.


 “내 메이스가 탐났던 거야? 미안하지만 못 주겠는걸. 이거 지금 내가 쓰는 거거든.”


 에스트레아는 그렇게 말하고 킬킬대며 웃었다. 


 “예쁜 오빠. 나는 지금 만날 사람이 있어서 오빠랑은 못 놀아줘. 그러니 방해하지 말아줄래? 일이 끝나면 실컷 놀아줄테니까.”


 에스트레아는 말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생글대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말 뒤에는 분명히, 건들지 마. 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으며 그 말은 엄밀히 말하자면 협박에 가까운 것이었다. 카노르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펴고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매달았다.


 “내 이름은 카노르야.”


 그는 그것만을 짤막하게 말하고선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분명 다른 자들이 잔뜩 뭐라고 쏘아대겠지만 별로 상관 없었다. 저들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허나 그들을 그곳으로 데려가 희생양으로 삼거나 자신과 같은 일을 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제 손으로는. 카노르는 정말로 오랜만에 흥미를 느꼈다. 다른 처형자들에게 저들의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조금은 통쾌한 결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그는 정말로 강해 보였으니까. 카노르는 그대로 천천히 강가를 향해 걸었다. 문득 그의 귓가에 여자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에스트레아 페른이야-!”


 카노르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평소보다 좀 더 짙어진 듯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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