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와 같은 오후였다. 적당히 시끌거리는 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서로를 향해 장난을 치며 이따금씩 내지르는 웃음기 섞인 비명소리, 거리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사이로 조금은 이질적인 이가 하나 눈에 띄었다. 그는 무엇을 찾기라도 하는 듯이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다녔다. 특히 젊은 아가씨와 함께 있는 사내를 볼 때면 그의 은빛 눈동자는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매의 그것처럼 빛났다.


“어, 리안 씨. 오늘도 라퀴엠 씨를 찾고 있나요?”


그런 그에게 말을 건 것은 붉은 머리의 소녀-엄밀히 말하자면 소녀와 아가씨의 경계에 있는-였다. 그녀는 방금까지 대장간에 있다가 나오기라도 한 듯 얼굴과 손, 옷에 검댕 같은 것이 잔뜩 붇어있었다. 리안은 그런 그녀에게 눈길을 슬쩍 던지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또 사라져서 곤란한 차였거든요. 혹시 라퀴엠 님을 보셨습니까, 베일엑스 양?”

“카트린이랍니다, 리안 씨. 차라리 카트린 군이라고 불러줄래요? 그 편이 더 익숙해서요. 아, 오늘은 못 봤어요. 마을에 오지 않은 것 같은데요?”


베일엑스 양이라고 불린 카트린 베일엑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깨에 닿을 듯 말듯한 짧은 붉은색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리안은 그 대답을 듣고선 예의를 갖추어 정중히 인사했다.


“여성은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모습이든 당연히 존중받아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더군다나 베일엑스 양처럼 올곧은 정신을 가지신 분이라면 더더욱이 그렇지요. 그러한 연유로 베일엑스 양의 청은 들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카트린은 어쩔 수 없단 듯 킥킥대며 웃고선 리안을 향해 가벼운 목례로 인사하고선 다시 제 갈길로 가버렸다. 리안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도망을 치면 거의 대부분 여자를 만나러 가는 라퀴엠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여자를 짝으로 맞이하고 싶어해 역시 대부분 인간의 마을로 도망오는 라퀴엠이었다. 그런 그가 인간의 마을에 오지 않았다니. 보통의 경우라면, 리안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것이나 카트린 베일엑스의 답을 들은 이상 더 물어봐도 소득이 없다고 결론내렸다. 괴팍한 드워프 대장장이의 조수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그녀의 말에 의하면 조금 비밀스러워보이고 싶기에 비밀에 부친-여러 경로를 통해 마을의 일과 흥미있는 일에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없다, 라고 하였으니 확실히 이 마을에는 오지 않은 것이겠지. 그렇다면 남은 곳이라고 할 것도 없다. 리안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또 그곳인가.

꽤나 깊은 숲속이었다. 인간의 발걸음이 닿는 일은 굉장히 드문 곳이었기에 흙길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으며 여타 소음들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로지 들려오는 것은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갈때마다 나뭇잎들이 재잘거리는 사그락 소리와 새소리뿐이었다. 그저 나무와 풀과 바람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완전할 것 같은 공간 속에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듯하게 보일 정도로 강렬한 사내가 서 있었다. 남색의 머리를 약간 길지만 단정하게 기른 그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기라도 하는 듯이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를 찬연히 빛냈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입술을 열었다.


“아름다운 메디. 거기에 있죠? 다시 한번 당신의 그 아름다운 보랏빛 눈을 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지 좀 말라고 했을텐데요. 그리고 대체 언제 들어먹을 거죠? 제 이름은 메디가 아니라 메두사라고 했을텐데요. 라퀴엠 씨.”


라퀴엠이라 불린 남빛 머리의 사내는 나무 그림자에서 나타난 칠흑같이 어두운 머리의 여인을 보고서는 만면에 미소를 피워내었다. 가지런한 흰 이빨이 나뭇잎 새로 새어들어온 햇빛을 받아 빛을 내었다. 메두사는 그런 그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벌써 이게 몇 년째인지. 인간의 세대로 쳤을 때 수 세대 정도는 가뿐히 지났을 시간 동안 질리지도 않고 그녀를 찾아오는 사내였다. 이쯤 되면 질릴 때도 되었을텐데.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퀴엠은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두어 발자국 다가섰다.


“메디, 오늘은 제 이름을 불러주는군요. 기쁘기 그지없네요. 그래서? 어디 가고 싶은 곳은 없나요? 당신이 가고 싶은 곳이라면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도록 하겠고, 당신이 원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어떤 일을 벌여서라도 가져오겠어요. 그러니 제게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줘요, 사랑스러운 메디.”

“누누히 말했지 않나요. 제가 원하는 것은 그대가 이 우습지도 않은 짓을 집어치우는 거예요. 그대의 원나잇 상대가 될 생각은 없다고 했을텐데요. 그리고 그 어조 이상해요. 그만두시죠. 평소가 그나마 더 낫습니다.”

“이런, 그런가. 캣의 말이 틀렸군. 캣이 틀린 건 처음인걸?”


라퀴엠은 키득, 가벼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볼을 가볍게 긁적였다.


“캣이라니, 누구죠?”

“아,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 마을에서 일하는, 드워프네 조수. 헤에, 왜? 내가 그 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싫어? 질투-라는 걸까나, 메디?”

“우스운 소리. 오히려 라퀴엠 씨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이쪽에선 감사할 따름이예요.”


메두사는 날카로운 시선을 살며시 떨구어 제 발치를 돌아다니는 뱀을 바라보았다. 라퀴엠은 그 모습까지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선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띄워내었다. 메두사는 잠시동안 뱀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시선을 들어 라퀴엠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어라고 하였길래요?”

“여자들은 정중하고 무게감있는 남자들을 좋아한다더군. 아, 다정한 남자도 좋아한다고 했어. 존댓말을 하면 반응이 좋을 거라고 했는데.”

“그녀가 사람들에겐 전부 개인차가 있다고 안 하던가요?”

“아, 그 말은 메디는 존댓말이 취향이 아니라 이런 평소의 내가 취향이라는 말인가?


라퀴엠은 질리지도 않는 듯 씨익 웃으며 메두사에게 한발 더 다가갔다. 메두사는 정말 질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그를 바라보다가 작게 키득 웃어버렸다. 그녀의 미소가 라퀴엠의 눈에 비쳐지자 라퀴엠의 미소 역시 한결 더 깊어졌다. 그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미소를 먼저 지워버린 것은 언제나처럼 메두사였다. 메두사는 그로부터 한 발 뒤로 물러나며 손등으로 볼을 살짝 부볐다. 그녀는 다시금 시선을 라퀴엠으로부터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세요. 곧 언니들이 나올텐데 복잡한 일이 생기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요.”

“…흐음, 왜? 나는 오늘 여기 있으면서 상견례까지 마칠까 싶은데.”

“라퀴엠. 저 농담하는 거 아니예요.”


메두사는 살짝 눈을 치켜뜨며 라퀴엠을 바라보았다. 라퀴엠은 그것마저도 좋다는 듯 싱글싱글 웃고만 있었다. 라퀴엠은 메두사의 볼이 아까보다 더 발그스레 해졌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그 사실을 구태여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그 때였다. 라퀴엠의 뒤편에서 낙엽을 밟는 바스락 소리가 난 것은. 라퀴엠은 순간적으로 몸을 확 긴장시키며 메두사가 있는 쪽으로 제 몸을 날려 메두사를 제 등뒤로 돌려 그녀를 보호하는 듯이 서고는 소리가 난 쪽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음기를 잔뜩 머금고 있던 푸른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서, 할 수만 있다면 그 소리를 낸 무언가를 눈빛으로 찔러 죽일 수 있을것만 같았다.


“뭐하는 놈이냐.”


목소리 또한 변했다. 방금까지 메두사와 대화하던 때의 라퀴엠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다감했고 부드러웠다. 허나 지금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과연 방금 전의 그 사람과 이 사람이 동일인물인지 조금 혼란스러워질 정도로 냉막하고 차가웠으며 착 가라앉아있었다. 메두사는 그가 자신을 지켜주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그렇게 싫지는 않은지 그의 뒤에서 앞쪽을 빼꼼히 넘겨다보고 있었다.


“리안입니다.”


리안이 수풀을 헤치고 나타났다. 이곳으로 오는 길을 조금 서두른 것인지 늘 단정하던 그의 머리와 옷차림은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그 단정하던 머리에 붙어있고 꼽혀있는 나뭇잎을 보고 있자니 라퀴엠은 형형하게 내뿜고 있던 기운을 누그러뜨리고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평소 흐트러지지 않는 사내의 흐트러진 모습만큼 보기 좋은 것도 없으니 말이다. 라퀴엠은 키들키들거리며 웃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메두사를 지키는 듯이 서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설령 그의 앞에 지금은 오랜 전설이 되어 이야기의 저편으로 사라진 에인션트 드래곤이 나타난대도 여전히 이렇게 메두사를 보호하는 듯 서있을 것마냥 단단히 서 있었다. 리안은 자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라퀴엠이 웃음을 터트리자 제 눈썹을 가벼이 치켜세웠다.


“뭐 우스운 것이라도 보신 듯한 태도로군요.”

“하하, 하하하하! 아니, 그냥 좀 평소에 보지 못하던 모습이라 기분이, 으흐흐, 유쾌해졌을 뿐이야!”

“그 수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 즐거워하는 모습.”

“하하하! 이야, 역시 리안은 눈치가, 하하! 빠르다니까?”


라퀴엠은 능청스레 답하고선 제 머리카락 쪽을 살짝 가르켰다. 리안은 그제서야 제 머리에 나뭇잎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지 약간 머쓱한 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내려 나뭇잎을 떼어내었다. 메두사는 리안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있었기에 라퀴엠의 뒤에서 살며시 걸어나왔다. 리안의 눈과 메두사의 눈이 마주쳤고 그들은 서로를 향해 예의를 갖추어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좋은 오후입니다, 메두사 양.”

“네, 좋은 오후네요. 리안 씨.”

“라퀴엠 님이 귀찮게 굴거나하진 않으셨습니까.”

“평소와 같았답니다.”

“오늘도 실례를 범하고야 말았군요. 사죄드립니다.”


리안은 고개를 깊게 숙여 메두사에게 사죄를 표하듯이 인사했다. 라퀴엠은 그런 모습을 보며 입술을 살며시, 메두사에게 보일 정도로만 삐죽거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입술을 삐죽이는 모습을 보고 살며시 미소를 머금는 메두사를, 라퀴엠 그 자신은 보지 못했다. 리안은 다시금 허리를 펴고 딱 바른 자세로 섰다. 그의 눈동자가 라퀴엠을 똑바로 향했다.


“이런 말씀 드리면 또 싫어하시고 도망치려 하실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해야겠습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몇 개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저랑 같이 가시죠.”

“내가 그 말에 뭐라도 대답할지도 알고 있겠지, 리안?”

“라퀴엠 님 또한 제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고 계시겠지요.”

“내가 그 반응에 반대할거라는 것도 뻔한 이야기고 말이지.”


라퀴엠은 싱글싱글 웃으면서도 리안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메두사가 작게 한숨을 쉬며 라퀴엠의 어깨를 두어번, 가볍게 두드렸다.


“응? 왜 그래, 메디. 이 내 얼굴을 그렇게 또 보고싶었던 거야? 으응, 그런 거였다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나는 하루 종일 메디만 바라봐줄 수 있으니까 말이지.”

“꿈이라도 꾸는 건가요, 라퀴엠 씨? 그럴리가 없잖아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리안 씨를 따라서 할 일을 하고 오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장 가버릴 테니까요.”

“아아, 새치름한 고양이 같은걸, 메디-.”

“메두사 양도 저렇게 말씀하시는 데 안 갈 생각이십니까.”


리안의 표정은 언제나와 같이 약간은 무덤덤하게, 바위처럼 느껴지는 표정이었지만 왠지 지금만큼은 평소와 다르게 약간 희열을 머금고 있는 듯도 했다. 드디어 라퀴엠을 찾아서, 별다른 저항 없이 데려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리라. 평소 같았으면 마을을 네다섯바퀴 정도는 기본으로 돌고, 노점상을 두어 군데 정도 파손시킨 후에야 라퀴엠을 데려갈 수 있었던 리안이니, 이렇게 평화로운 해결은 당연히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을 것이리라. 라퀴엠은 리안의 표정에서 미묘하게 느껴지는 희열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항복한다는 듯 양 손을 들고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알았어. 갔다오면 되잖아. 대신 갔다가 다시 오면 말이지. 반겨줘야 해, 메-디 쨩.”

“으, 또 이상한 말투네요. 흐음…알았어요. 약속할게요.”


메두사는 라퀴엠의 말에 살며시 미간을 찌푸리는 것 같다가도 이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퀴엠은 그 모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선 콧노래를 부르며 리안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안은 메두사에게 가볍게 목례하고선 그런 라퀴엠의 뒤를 따랐다. 메두사는 잠시 가만히 서서 멀어져가는 라퀴엠과 리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신경쓰이는 일을 처리한달까, 그래도 되겠지. 메두사는 머리를 살며시 가다듬고 마을로 가는 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리안과 라퀴엠은 산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한동안 별다른 말이 오가지는 않았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굉장히 놀랍게도 리안이었다.


“이쯤 되었으면 그만 두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진심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라퀴엠 님.”

“…우스운 소리를 하네.”


라퀴엠의 입가가 기묘하게 비틀렸다. 평소같았으면 적당적당히 대꾸했을 그였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진심처럼 보인다라, 이거 되게 웃긴 말이잖아.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진심인 거지?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기만 하면 진심이고 진중한 것인가? 보자마자 반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닌가? 볼 때마다 점점 더 빠져드는 것만이 진실한 사랑인거야? 세상에 진실한 사랑을 무엇으로 판단하지? 아니. 애초에 그것을 판단하려 드는 것이 더 우스운 일이 아닌가, 리안. 나는 그녀에게 정말로 진심이야. 모든 마음을 다해 그녀를 사랑하고 있고 다가가고 있다. 그녀가 이런 나를 쉽사리 믿지 않는 것은 이해해.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진심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마. 나는 정말로 진심이니까.”


마을은 적당히 복작거렸다. 메두사는 딱히 남자를 꼬셔내려 내려온 것이 아니기에 메두사는 다시 한번 머리에 둘러쓴 두건을 매만지고 지나가던 이를 붙잡았다.


“어엉? 무슨 일이라도 있는걸까, 예쁜 언니?”


메두사는 가벼이 눈을 깜박거렸다. 짧은 붉은 머리, 방금까지 풀무질이라도 하다 온건지 몸 이곳저곳에 가득한 검댕이 가득했다. 키도 메두사보다 컸고 무엇보다 그 사람의 몸은 꽤나 다부졌고 몸 군데군데 상처도 있었다. 그랬기에 메두사는 당연히 그 사람이-조금은 마른 편의-남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꽤나 유쾌한 아가씨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고선 놀랄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예쁜 언니라니, 묘하게 라퀴엠을 연상시키는 어조였기에 그녀의 놀람은 더해질수밖에 없었다. 


“아, 아. 이 마을에 혹시 캣이라는 애칭을 가진 사람이 있나요?”

“캐-앳? 그거 난데, 날 왜 찾아?”


메두사는 한번 더 놀랄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이 그 캣이라는 건가. 라퀴엠과 꽤 친하던 것 같아서 잠시 얼굴이나 볼까 하고 온 것이었는데 마침 말을 건 것이 그녀 자신이었다니. 메두사는 당황한 모습을 숨기려 애쓰며 그녀를 살며시 바라보았다. 여러모로 아름답고 여성스럽게 예쁘다, 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잘생겼다, 가 어울릴 정도로 시원시원하게 생긴 이목구비였다. 메두사는 마음 한켠에 있던 찜찜함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고선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은 과연 무엇을 찜찜하게 여기고 있던 것일까. 이 아가씨와 라퀴엠이 혼인이라도 할까봐 불안해했던 걸까? 메두사는 입술을 살짝 앙다물었다.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그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 위치인가? 몇 번을 생각해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 로 돌아왔기에 메두사는 좀 더 초조한 듯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언니,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누가 고민이 있으면 캣이라도 찾아가라고 한 거야?”


캣이라는 소녀, 메두사와 마주 서 있는 그 소녀는 키득키득 웃으며 그녀를 길 한켠에 있는 벤치로 안내했다.


“제대로 상담은 못 해줄거 같아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말해줘.”

“…별거 아니예요. 그저 우연. 당신의 이름을 우연히 듣고 흥미가 조금, 생겨서.”

“에엥, 이름만 듣고 흥미가 생긴다구? 좋아하는 남자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기라도 한 거야?”

“아니예요, 좋아하지 않아요.”

“흐응, 정말이야? 일단은 누군가의 대화에서 내 이름이 나왔는데 그 사람에게 물어보지 못했다는 거네. 그 사람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거 싫었던 거지?”


캣은 벤치에 편안하게 기대앉았다. 그녀는 연신 싱글싱글 웃고 있었고 그럴수록 메두사는 금방이라도 달아오를것만 같은 볼을 감추는데 급급했다.


“뭐, 그럼 약간 흥미가 가는 사람이라고 해둘게. 그래서 언니의 고민은? 이 내가 그 남자를 낚아채갈까봐 불안해서 염탐하러 온 거야?”

“그럴리가 없잖아요. 오히려 당신이 데려가주면 이 쪽은 감사라구요.”

“어라라, 정말이려나? 그럼, 언니의 삶에서 그 남자를 완전히 배제하고 생각할 수 있어? 나는 질투심이 무-척 강하니까 언니의 그 사람을 만약 내가 데려간다면 앞으로 얼굴도 못 볼지도 모르는데.”


캣은 메두사의 의중을 꿰뚫어볼 듯한 태도를 취하며 싱글싱글 웃었다. 메두사는 두건을 다시 고쳐쓰며 볼을 슬쩍 문질렀다. 자신은 과연 라퀴엠을 완전히 제 삶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까? 메두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눈 쪽을 감쌌다.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네-. 있지. 더 늦게 가면 분명 우리 아저씨가 엄청 화낼거야. 안 그래보여도 엄청 걱정하니까 말이지. 그러니 먼저 가볼게. 마지막으로 이 말만 하고!”


캣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 엉덩이 쪽을 탁탁 턴 뒤 메두사의 앞에 똑바로 서서 씨익 웃었다. 금갈색 눈동자와 보랏빛 눈동자가 마주쳤다.


“사랑하는 지 아닌지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해. 그럴때는 이렇게 생각해봐. 지금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말이지, 그 누가 와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거라고. 만약 흔들린다면 그건 단순한 호감. 사랑은 아니란 소리야. 너무 엄격한가?”


캣은 그 말을 마치곤 까르르 웃으며 뛰어가버렸다. 메두사는 그녀의 그 말을 곰곰히 곱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연 라퀴엠 그는, 자신에게 진심인 것일까? 그래서 그녀가 그를 받아주면 그녀와 그는 행복할 수 있을까, 영원히? 인간에 비하면 영원 영구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사는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그 질문은 더 절실했다. 남은 여생동안 그들이 서로만을 사랑할 수 있을것인가? 그 답은, 그녀 혼자서는 내릴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그녀가 있던 곳으로 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숲은 언제나처럼 고즈넉했다. 바람이 사그락 소리와 새의 소리만이 가득찬 듯이 보이는 그 곳. 메두사의 보랏빛 눈동자는 그 숲 안쪽에서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했다. 진한 남빛의 머리카락-. 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메두사는 그가 있는 공터 한가운데로 걸어갔고, 그는 고개를 돌려 메두사를 바라보며 활짝 웃어보였다.


“어디 가버린 줄 알고 걱정했어.”

“가면 어딜 간다고 걱정해요? 이래봬도 제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래도 걱정되는 게 사랑이라는 거지.”


라퀴엠의 미소는 언제나와 똑같았다. 그 미소를 보자 메두사는 마음 한 켠을 꽉 메우고 있던 고민과 걱정이 조금 정도는 풀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뭐, 아직 그를 받아줄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조금 정도는 더 마음을 열고 그의 말을 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메두사는 그를 향해 가벼이 웃어보였다.


“또 똑같은 소리예요.”

“아, 싫다면 다른 말로 바꿀게. 뭐가 좋겠어?”

“싫다는 말은 아니예요. 아, 좋다는 말도 아니니 괜한 기대는 말아주세요.”

“아, 분부대로.”


라퀴엠은 마냥 좋은지 그녀를 향해, 그녀와 눈을 맞추고 환히 웃어보였다.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메두사도 그와 시선을 맞춘 채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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