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트레아는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귀에 아직도 아바리스의 잔소리가 왕왕 울리는 것만 같았다. 제길, 변태 하나 집어던진게 잘못이라고? 그 녀석은 오트리스를 모욕했단 말이야. 에스트레아는 연신 투덜투덜거리며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된 이상 술이나 잔뜩 먹고 들어가서 골탕먹여주지. 그녀의 입가가 기묘하게 비틀려올라갔다. 누군가를 골탕먹일 궁리를 할 때 자주 짓는 미소였다.

 술집 안은 언제나처럼 용병들로 가득했다. 에스트레아는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빈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녀 앞에는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쓴 아일라실과 검은 페도라를 쓴 처음 보는 사내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손짓으로 웨이트리스를 불러 맥주를 주문하고선 안주거리로 나온 땅콩을 아일라실에게 집어던졌다. 아일라실은 땅콩을 솜씨 좋게 받아먹고선 능청스럽게 에스트레아를 바라보았다.


“그 괴랄한 모자는 또 어디서 가져온 거야?”

“괴랄하다니, 이 모자는 곧 대단한 유행이 될거라고.”

“괴랄해.”


에스트레아는 단호히 말하고선 키득대며 웃었다. 아일라실은 머쓱한 듯 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렸다. 그 때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검은 페도라의 사내가 모자를 벗고 에스트레아에게 말을 걸었다.


“이 모자 역시 괴랄하게 보이시나요, 레이디?”

“…앙? …뭐, 아니 그 정도는 아니지만 꽤 불편해보이네.”


에스트레아는 대충 대답하고 땅콩을 몇 개 오독오독 씹어먹었다. 그녀의 손이 땅콩 그릇으로 내려가는 순간 검은 페도라의 사내가 그녀의 손을 잡았고, 에스트레아는 기겁하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어느 새 다시 모자를 쓴 채였다. 페도라의 챙 아래로 검푸른빛의 머리카락이 내보였다.


“레이디의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가 가질 수 있을까요?”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기에 꽤나 듣기 좋은 목소리였으나 에스트레아는 그것보다 우선하여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잡은 손을 탁 털어냈다. 티는 내지 않으려 했지만 입술 새로 새어나오는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손을 잡지 않으면 이름을 물을 수 없나보지?”

“저런,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불쾌하셨다면이 아니라, 불쾌해.”


그녀는 으르렁대듯이 일갈하곤 어느새 나온 맥주를 들이켰다. 사내는 그런 에스트레아를 잠시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모자까지 벗어보였다.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레이디.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이런 일이 이 주점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식으로 사죄하는 사람이 드나드는 주점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주점 안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의 눈이 그와 에스트레아가 있는 탁자로 향했다. 에스트레아는 질겁하며 그에게 손사래를 쳐 보였다.


“제기랄, 됐어. 됐다고. 앉아!”


그에 그 사내는 빙긋이 웃으며 에스트레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에스트레아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앉아버렸고, 그는 그런 그녀를 보며 연신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에스트레아는 괜시리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런 남자는 뭐랄까 조금, 거북스러웠다. 동족혐오라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에스트레아는 작게 킥, 하고 웃어버렸다. 그 미소에 사내의 미소가 살짝 이지러졌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사내는 이지러졌던 미소를 가다듬고서 에스트레아를 향해 다시 한번 환히 웃어보였다.


“레이디는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이 낮부터 맥주를 마시고 계신지 물어도 될까요?”

“너, 진짜 나한테 관심이 많네. 있지. 내가 늘 생각하는 게 있는데, 상대의 이름을 물을 때는 먼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게 맞는 거고 내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으면 네게 무슨 일이 있는지 먼저 말하는 게 맞지 않아?”


에스트레아는 속으로 키득대며 사내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본래 이 말은 길드에서 도도하기로 이름높은 세실리아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에스트레아는 마음 속으로 세실리아에게 감사하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내의 미소가 이지러질 것을 기대하며 즐거워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사내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진 것이다.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 이름은 센. 꽤나 실력있는 마술사입니다.”

“보통은 자기 실력을 그렇게 높여 부르지 않는데 말야?”


에스트레아가 빈정대듯 말했지만 센은 전혀 불쾌해하는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이 정도가 낮추어 부른 거라면 이해해주시겠습니까, 레이디?”

“하하, 그런 거 치곤 그리 유명하지 않은가봐? 이곳에 있는 사람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걸?”

“레이디의 그 날카로운 말이 조금은 사실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요. 제게 좋은 자극제가 되겠어요.”

“말 은근슬쩍 돌리는 건 수준급이라는 건 알겠네. 인정해줄게.”

“하하, 그럼-어떻게 해야 레이디께서 제 말을 믿어주실까요?”

“아아-그보다 잠깐. 내 이름은 에스트레아 페른이야. 그러니까 더 이상 그 빌어먹을 레이디라고 부르지 말아주겠어? 온 몸에 소름이 돋거든.”

“소름이 아니라 달콤한 전율이었으면 제가 조금 더 기뻤을 텐데요, 에스트레아.”

“꿈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에스트레아는 깔깔대고 웃으며 탁자에 제 발을 올려놓은 채 센을 바라보았다.


“보여 봐.”

“..흐음?”

“네가 네 말대로 그렇게 대단한 마술사라면, 증명해보라고. 그 대단한 마술로 말이지.”


주점 안에 작은 비웃음소리가 떠돌았다. 에스트레아와 센의 대화가 워낙 신랄했던 탓에-엄밀히 말하면 에스트레아가 한 말만 신랄했지만-주점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대화를 듣고 있던 탓이었다. 그들은 센이 마술사라는 것을 믿고 있지 않았다.


“…흐음-.” 


센은 주점 안을 둘러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검은 손수건을 하나 꺼내었다. 그는 손수건을 에스트레아에게 보여주었다.


“앞 뒤, 다 완벽한 흑색이죠?”

“어엉, 그러네.”


에스트레아는 짐짓 심드렁한 태도를 취하며 발을 까딱까딱거렸다. 센은 손수건을 손 위에 올려두고 입김을 후- 분 뒤에 손수건을 공중으로 던져올렸다. 손수건은 허공에서 살랑살랑거리며 서서히, 서서히 떨어져내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전부 그 떨어져내리는 손수건으로 향했다. 에스트레아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흑색이었던 손수건이 다른 색을 띄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일순간, 센은 그 손수건을 낚아채어 주먹 안으로 감추었다. 그리고 주먹 위에 입술을 가볍게 얹어 제 입김을 한 번 더 불어넣었다. 팡, 작고 귀여운 파열음이 들려왔다. 다음 순간, 센은 에스트레아에게 백색 독수리를 내밀고 있었다. 독수리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파득거렸기에, 에스트레아는 의식하는 것보다 먼저 독수리를 받아들었다. 독수리는 그녀의 손에 들어가자 마치 그녀를 위해 이 곳에 있다는 듯 얌전해 져서 그녀의 어깨에서 날아가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있었다. 


“이건 좀 신기하네-“

“오오, 형씨 은근 재능있구만? 대단하네. 신기해.”


주점 안은 순식간에 왁자해졌다. 다들 센을 향해 대단하다며 한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센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지만 아까부터 조용히 에스트레아의 옆에 앉아있던 아일라실만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센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에게서는 지나칠 정도의 자만심이 묻어나온다고 아일라실은 생각했다. 어딘가 마음 한켠에 걸리는 느낌. 아일라실은 자신의 직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에스트레아는 독수리가 마음에 들었던 듯, 연신 독수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자, 이제 인정해주실 건가요, 에스트레아?”

“흐음, 그러지 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씨익 웃어보였다. 센이 처음으로 본 그녀의 제대로 된 미소였다. 그에 센은 입을 열어 그녀의 미소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에스트레아는 ‘내가-참아주지’ 와 ‘듣다보니-칭찬-은근-괜찮네’ 정도의 표정으로 센의 칭찬을 듣고 있었다. 센이 한참동안 칭찬을 퍼붓듯이 하다가, 목이 말라져 주방으로 물을 청하러 간 동안 에스트레아는 느긋하게 상체를 뒤로 제끼고 앉아서는 콧노래를 흥흥거리며 독수리의 날개깃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있었다. 아일라실이 입을 살며시 열어 에스트레아를 불렀다.


“..에스트레아.”

“왜?”

“지금, 보고 있는 건가?”


굉장히 수수께끼 같아 영문 모를 이 말에, 에스트레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장까지 돼서 이 정도의 시선을 못 느끼면 벌써 백번은 땅에 묻혔다구.”


그녀의 어조에는 웃음기마저 묻어났다. 전혀 긴장하지 않는 듯한 그 모습에 아일라실은 작게 픽, 하며 웃었다.


“그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아아, 응.”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센이 탁자로 돌아왔고, 에스트레아가 말한 그 ‘시선’의 주인은 사라졌다. 전혀 살기를 담고 있던 시선도 아니었고, 딱히 에스트레아 자신을 노린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에스트레아는 그 사실을 머릿속 한 구석으로 치워두었다. 

 그 뒤로 센과 에스트레아는 1시간 가량 더 대화를 나누었다. 그 시간 동안 시선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별다른 일도 없었다. 에스트레아는 그 1시간 동안 맥주를 일고여덟 잔 정도 들이켜댔고, 그 사실을 듣고 격분해서 달려온 아바리스에 의해 끌려가듯이 길드로 돌아갔다. 헤어질 때 센은 에스트레아의 손등에 가볍게 입맞추었고 주위의 예상과 다르게 에스트레아는 센의 얼굴을 후려갈기지 않았다. 센은 에스트레아와 아일라실, 아바리스 등이 레어로 돌아간 후, 자리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에스트레아나 아일라실처럼 감각이 예민하지 않은 그는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눈치를 채고도 무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에 앉아 커피만 홀짝홀짝 마셔대었다. 

 그 시각 주점으로 향하던 사내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길을 뛰어가는 검은 머리의 아가씨를 보고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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